쿠농 / 황흑 2014. 9. 22. 02:11

달성표 01. 황흑 조각 (감정동기화 au)








(감정동기화 / Sentimental Synchronization) - 임찹쌀님 제작 설정
폭주하는 쪽은 PS (Pop the Sentiment)
메마르는 쪽은 LS (Lack of Sentiment)
피부 접촉, 특정 감정이 서린 물체와 접촉, PS의 정신에 LS가 동기화하는 등의 방법으로 감정을 주고받는다.
발작 단계는 다음과 같다.
PS 발작 1단계 : 어느 순간부터 모든 것에 예민해지며, 화를 주체할 수 없거나 눈물이 많아진다.
PS 발작 2단계 : 고열, 심장 박동 130 이상. 주변 환경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PS 발작 3단계 : 온몸이 찢어지는 고통, 정신 분열, 내출혈, 사망.
LS 발작 1단계 : 말수가 줄어들고 넋을 놓게 되며,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는 일이 힘들어진다.
LS 발작 2단계 : 단어 망각, 기억력 저하, 불면증, ‘나’라는 존재 이외에는 생각 불가능.
LS 발작 3단계 : 체온 저하, 몸의 끝부분부터 마비, 사망
파트너와 1주일 이상 교류하지 못하면 발작이 시작된다.













 부서지는 소리를 내며 현관문이 열렸다. 깜짝 놀라 방에서 나온 쿠로코는 다짜고짜 집안에 들어와서 캐리어를 내팽개치는 키세 때문에 두 번 놀랐다. 사흘 만의 재회였는데 키세는 쿠로코가 무슨 일이냐고, 왜 그러냐고 묻기도 전에 쿠로코를 잡아당겨 덥석 끌어안았다. 쿠로코는 팔을 둘러 토닥여줄 여유 공간을 확보할 틈도 없이 키세의 품에 갇히고 말았다.

 “…키세 군?”
 “조용히 해 봐요. 나 죽어.”

 지나치게 쿵쿵거리는 심장이 맞닿은 갈비뼈를 넘어 고스란히 전해져서 쿠로코는 입을 다물었다. 눈을 감고 고개를 모로 돌려 키세의 가슴팍에 기댔다. 아주 작은 틈새도 만들지 않겠다는 것처럼 온힘을 다해서 쿠로코를 안고 있는 키세는 그러고 한참을 있었다. 키세가 팔의 힘을 풀자 쿠로코가 키세를 와락 밀쳐냈다. 평온해진 키세의 얼굴과는 반대로 쿠로코는 하얗게 질려 있었다.

 “나 다녀왔…. 쿠로콧치 괜찮아요?”

 안색이 파래진 쿠로코는 손까지 덜덜 떨고 있었다. 그제야 제 품에 안겨있던 쿠로코의 상태를 알아차린 키세가 대번에 당황한 얼굴을 했다. 쿠로코의 팔목을 잡고 소파 앞으로 데려가 어깨를 눌러 앉혔다. 소파에 앉혀진 쿠로코는 순간적으로 너무 격렬하게 밀려든 키세의 감정 때문에 혼란스러워진 머릿속을 애써 진정시켰다. 쿠로코가 길게 숨을 내뱉고 천천히 눈을 뜨기 전까지 키세는 옆에 얌전히 앉아 초조한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네가 미안할 건 없습니다.”
 “그래도, 어, 내가 너무 갑자기 그랬죠. 급해서…. 많이 놀랐어요?”
 “예, 좀. 지금은 괜찮으니 됐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하고 묻는 눈으로 쿠로코가 바라보자 키세는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 애초에 알고 있는 감정의 종류가 턱없이 적은 쿠로코가 정확하게 짚어낼 수는 없었으나, 키세에게서 밀려들어온 것들은 불안함과 초조함이 주를 이룬 격한 감정이었다. 전달받는 것만으로도 손이 떨릴 만큼 버거웠다.
 그리고 꼭, 강력한 청소기로 가슴 한구석을 아리게 쥐어짜는 것 같은. 종류를 알 수 없었지만 저절로 아랫입술을 깨물게 되는 그런. 

 “음…. 쿠로콧치, 아무튼 그동안 잘 지냈어요?”
 “지나치게 조용했던 걸 빼면 나쁘지 않았습니다.”
 “뭐야, 정말? 나쁘지 않았다고요? 사흘 동안이나 혼자 있었는데? 나 없이? 진짜?”

 어쩌면 이렇게 표정이 다양할 수 있을까. 쿠로코는 몇 초 간격으로 눈이 동그래졌다 가늘어졌다 입술이 삐죽거렸다 크게 벌어졌다 하는 키세의 얼굴을, 무지개를 처음 보는 일곱 살 아이의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대답은 없이 한참을 눈만 마주치고 있으려니 서운함 가득이었던 키세의 얼굴도 점차 어리둥절해졌다. 

 “가끔 생각합니다.”

 대뜸 쿠로코가 그렇게 말했다. 파트너와의 신체 접촉을 통해 감정을 교류하는 것이 아니면, 원래 LS의 감정 표현은 극단적으로 서툰 것이 일반적이었다. 쿠로코는 제 생각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차근차근 말을 골랐다. 겨우 사흘이라고는 해도 떨어져있었던 시간이 영향을 주는 탓인지 안 그래도 부족한 단어 표현력이 더 형편없어진 것 같았다.

 “저는 감정 표현에 서툽니다만, 너를 걱정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해해주리라 생각합니다.”
 “아니, 뭐 그건 나도 마찬가지니까요. 이해를 못 하겠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그게 왜….”
 “따라서 이전 며칠의 생활이 나빴다는 말은 별로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좋지도 않았습니다.”
 “…….”
 “그래서 나쁘지 않았습니다, 가 제 대답입니다.”
 “…쿠로콧치.”
 “차라리 키세 군이 LS, 제가 PS였다면……. 그랬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조금 더 수월하지 않을까 하고, 가끔 생각합니다.”

 키세의 입술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웃을 때면 동그랗게 뭉쳐지는 볼 부근이 울음을 참는 아이처럼 딱딱하게 굳은 것 같았다. 쿠로코는 아주 약간 당황한 얼굴빛이 되었다. 쿠로코 쪽을 향해 반쯤 돌아앉아 있던 키세는 정면으로 몸을 틀어 앉았다.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있잖아요, 나는…. 사흘이 삼 년 같았어요. 촬영 내내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랑 좋아하는 척해야 하고, 쿠로콧치가 보고 싶은데 옆에 없고. 그래서 기분이 나빠지는데 해결할 방법도 없고. 피가 세 배는 빨리 도는 것 같고.”
 “고작 사흘인데 그렇게…….”
 “시간의 문제가 아니었다고요. 사실 일주일은 지나야 발작이 온다고 하지만 우리, 사흘이나 떨어진 것도 처음이었잖아요.”
 “…….”
 “산골이라 전화도 안 되고. 진짜 첫날 저녁부터 뛰쳐나오고 싶은 걸 얼마나 참았는데 나는.”

 서러움을 토로하는 것 같지만 억울한 어투는 아니었다. 오히려 잔뜩 주눅이 들어있는 것 같아서 쿠로코는 가만히 키세의 손등을 제 손으로 덮어주었다. 쿠로코보다 손가락 한 마디는 큰 키세의 손이 뒤집히더니 쿠로코의 손을 깍지껴 잡았다. 꾸욱, 힘이 들어갔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래도 넘치는 게 주체가 안 되는 나보다 모자란 쪽인 쿠로콧치가 좀 덜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음. 쿠로코가 반박인지 긍정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미안해요. 내가 바보 같았어.”
 “괘씸하네요. 오늘은 각방입니다.”
 “쿠로콧치!”

 담담한 쿠로코의 대답에 키세가 소파를 박차고 일어날 만큼 화들짝 놀랐다. 쿠로코는 농담입니다, 하고 덧붙였다. 뜬금없는 쿠로코 나름의 농담에 키세는 황망한 얼굴이 되었다. 쿠로코는 놀란 탓에 제 손을 놓치고 비어버린 키세의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
 “적어도 저는 에너지가 덜 소비되는 쪽이니까요, 일단은.”

 쿠로코가 인정하자 왠지 더 미안해진 키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찌그러져 있어도 예쁜 얼굴이 쿠로코는 매번 신기했다. 어째서 슬퍼진 겁니까, 속으로 생각하면서 키세의 손을 끌어다 잡았다.

 “어느 쪽이 더, 가 중요한 건 아니지 않나요.”
 “…….”
 “가슴이 아팠습니다. 아까는요.”

 가슴 한구석이, 아려올 만큼. 입술을 깨물게 될 만큼.

 “서툴러서 미안합니다.”

 바보. 왜 쿠로콧치가 사과를 해요? 결국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 키세의 손등을 쿠로코는 도닥도닥 두드려 주었다. 키세의 손을 잡고 있자, 키세가 없어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멍하게 보낸 사흘 동안 간간이 심장이 아래로 쿵 떨어지는 것 같았던 기억이 났다. 혀를 조금 내밀어 메마른 입술을 적셔 보았다. 터졌다가 아문 흔적이 느껴졌다.

 가슴 한구석이 아려올 만큼, 입술을 깨물게 될 만큼.

 “보고 싶었어요, 쿠로콧치.”

 쿠로코는 동의의 대답 대신 입을 맞춰오는 키세의 목을 둘러 안았다. 그리움의 형태를 알게 된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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