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농 / 황흑 2014. 10. 3. 20:26

달성표 12. 황흑 조각






쿠로코의 농구 / 황흑 조각

짧음 주의, 나이차 많이남 주의

둘이 아직 안사귐 주의...









  키세는 다녀왔습니다, 하는 인사를 좋아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도 하루에 한 번씩은 꼭 하는 말이었지만, 직접 하는 것보다는 누군가를 통해 듣는 것을 훨씬 좋아했다. 자신이 집을 지키고 있다가 돌아오는 누군가를 맞아주는 경우가 그 반대에 비해 적어서 그 순간 자체가 기쁘기 때문이기도 했다. 작품을 시작하게 되면 쿠로코가 등교하기 전에 출근해 쿠로코가 잠이 들고 나서야 귀가하는 키세는, 따라서 일을 쉬고 있으면서 낮잠을 자지 않아도 멀쩡한 상태일 때에만 쿠로코의 귀가 인사를 들을 수 있었다. 학창시절부터 이어온 연예계 생활로 인해 안정감에 목말라 있는 키세에게 나지막하고 담담한 쿠로코의 다녀왔습니다, 는 가장 평온하고 귀한 인사였다.


  다녀왔,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본능적으로 텔레비전 볼륨을 확 줄인 키세는 순식간에 현관으로 달려와 가방도 내려놓지 못한 쿠로코를 와락 끌어안았다. 덕분에 그리도 좋아하는 인사는 반쯤 윽, 하고 먹혀들어 사라졌다. 아마도 평균보다는 옅은 편일 쿠로코의 체향이 훅 밀려들어왔다. 키세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아, 쿠로콧치다.


  이제야 충전이 되는 기분이었다. 한참을 바빴다가 얻은 휴일이라 쿠로코와 제대로 대면하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한 집에 살아도 생활 패턴이 다르면 대화는커녕 얼굴을 보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꼭 끌어안고 있으면 진짜로 쉬는 기분이 들었다. 어떤 걸로도 맛볼 수 없는 기분이고 충족이었다. 

  자신보다 한 뼘은 더 큰 키세에게 폭 파묻힌 쿠로코는 갑작스레 젖혀진 고개가 아파 미간을 조금 찡그렸다. 그러나 자신을 품에서 떼어주는 키세가 활짝 웃고 있을 것이 분명해서, 쿠로코는 키세에게 들키기 전에 얼른 표정을 폈다.


  “어서 와요. 심심했는데.”

  “피곤할 텐데 깨어있었네요, 키세 군.”


  아이답지 않게 반듯한 존댓말을 쓰는 쿠로코는 열네 살이라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키세 군이라는 호칭을 썼다.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 키세의 주변 어른들이 키세 군, 하고 부르는 것을 듣고 배운 탓이었다. 서툴고 어린 발음으로 꼬박꼬박 키세 군이라고 부르는 게 귀여워서 가만히 뒀더니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대외적인 자리에서만 조심하면 어차피 호칭을 지적할 누군가와 늘 함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이미 입에 붙은 걸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고 두 사람 다 생각하고 있어서 지금까지도 키세는 쿠로코에게 키세 군이었다.


  “학교에서 별 일 없었죠? 밥은 먹었고요?”

  “매점에서 든든하게 사다 먹었습니다. 거르기라도 하면 카가미 군이 가만히 두질 않으니까요.”


  좋은 녀석이네. 키세는 씩 웃으며 쿠로코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었다. 단정했던 머리가 흐트러졌는데도 쿠로코는 키세의 표정을 보며 입가에 아주 조그맣게 미소를 걸었다. 키세가 언젠가 학교 앞에서 만난 적이 있던 카가미에게, 쿠로코의 시원찮은 끼니 해결을 단속해 달라고 부탁한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밥을 잘 챙겨먹은 쿠로코가 기특한 마음보다, 자신이 신경을 쓴 보람이 있다는 기쁨이 더 클 것이 틀림없었다. 서른둘의 키세 료타는 열여덟 살 쿠로코보다 십사 년을 더 산 어른이었지만, 주변의 유일한 아이인 쿠로코에게 이렇게나 간단하게 속내를 들키곤 했다.


  “그러는 키세 군은 드셨습니까?”

  “오랜만에 탄수화물도 먹었어요. 쿠로콧치는 내 걱정 안 해도 되는데 매번.”


  키세의 대답에 쿠로코는 키세에게 맞춰져 있던 시선을 아래로 뚝 떨어뜨렸다. 아직도 제 어깨에 둘러져 있는 키세의 한쪽 팔을 슬쩍 밀어냈다. 음? 키세는 불현듯 달라진 것 같은 공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쿠로코는 제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한 번도 거칠게 닫힌 적 없는 방문은 오늘도 얌전히 달칵, 하고 닫혔다. 피곤한 모양이지, 키세는 생각했다. 조금 머쓱한 뒤통수를 긁적이며 소파로 돌아가 앉았다. 텔레비전의 볼륨을 조금 키웠다.


  방에 들어와 가방을 내려놓고 침대에 풀썩 앉은 쿠로코는 걱정, 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했다. 일을 쉰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니 요리에 솜씨라곤 없는 키세가 혼자서 밥을 잘 챙겨 먹었을지 궁금한 것은 당연했다. 그것이 걱정이라는 생각은 못 했다. 더구나 걱정을 안 해도 되는 사이, 라는 것은 어떤 것인지 쿠로코는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린 사람은 나이든 사람의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자신에게는 키세의 걱정을 할 자격이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열네 살이나 어리기 때문에.


  교복을 벗어 옷걸이에 걸어놓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쿠로코는 대롱대롱 매달린 교복 재킷과 셔츠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검은 색에 하얀 셔츠였지만 키세가 입는 수트와는 확연히 달랐다. 생김새는 물론 크기와 느낌 모두, 어느 한 구석도 비슷한 부분이 없었다. 호불호를 겉으로 드러내는 성격이 아니라 말로는 하지 않았지만 이 교복은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언제쯤, 벗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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