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차 / 건가람 2014. 9. 28. 23:11

달성표 11. 건가람 조각 (둥굴레차! 전력60분)




둥굴레차! 전력 60분 조각입니다.

주제는 <가을> 이었습니다 :)


교복을 입은 가람이와 교사 건이가 보고 싶어서 쓴 건가람인데

어째 범죄를 저지르게 했네요... 심지어 은찬이도 공범... 은찬아 누나가 미안해...










  이맘때면 늘 학교는 시끌벅적했다. 대한민국 고등학교의 가을이 분주한 이유는 대부분 한 가지였다. 가람의 학교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미 학급마다 체육대회 준비로 들떠 있었다. 저마다 응원 도구나 응원 구호를 만들고, 중간고사가 끝나 진도가 여유로운 수업시간이 되면 구기 종목 연습시간을 달라고 조르는 등의 풍경이 일상이 되어 갔다. 그 소란스러움 속에서 가람은 홀로 여유로웠다. 그 어디에도 참여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었다. 거의 모든 분야의 스포츠에 실력이 발군인 가람이었지만 정작 본인이 흥미가 없자 같은 반 아이들은 실망스러워했다. 그러나 실망하고 아쉬워하다가도 딱 잘라 거절하고 나면 잠시간 툴툴거린 후 금방 잊어버린다는 것을 가람은 잘 알고 있었다.


  5교시는 과학 시간이었고, 기간제 교사였다. 제법 화려하게 생긴 남자 기간제 교사는 평소에 쓰지 않던 안경을 쓰고 있었다. 교사의 얼굴을 보고 가람이 풉, 웃음보가 터지려는 것을 애써 참았다. 그러나 교사가 그런 가람을 지적할 겨를도 없이, 아이들의 거센 요구가 한꺼번에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저희 반 본선 진출도 했단 말이에요! 선생니임!”

  “연습하게 해 주세요! 어차피 과학 진도 지금 우리가 제일 빠르다던데!”


  선생니임, 선생니임. 한마음 한 뜻으로 아이들이 칭얼거렸다. 여자는 피구, 남자는 농구 본선 경기에 진출했기 때문에 생긴 상황이었다. 출전 선수들이 전부 연습을 하러 나가면 몇 남지 않는 아이들은 휴식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에, 학급 아이들의 대부분이 연습 시간을 강력히 원하고 있었다. 교사는 어울리지도 않는 보라색 뿔테 안경을 슥 고쳐 쓰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뭐, 니들 마음대로 해라. 다른 사고 치면 죽는다.”


  기간제 교사가 선언하고 나자, 감사합니다로 추정되는 각종 목소리들이 와그르르 튀어나왔다. 연습 시간을 줄 것이라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터라 미리 체육복 차림을 하고 있던 아이들은 순식간에 교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교실에 남은 서너 명은 저마다 책상 위에 엎드리거나, 휴대폰을 꺼내거나, 화장실에 가는 듯 교실 밖으로 어슬렁어슬렁 나갔다. 가람은 가만히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백건은 삽시간에 조용해진 교실을 황당하게 둘러보았다. 들썩들썩 터져나갈 것 같던 교실이 바람 빠진 풍선 꼴이 되어버렸다. 원래 과학 교사가 자리를 비울 동안만 수업을 맡는 입장이었으니 쉽게 연습 시간을 허락했지만, 정식 교사였다면 아이들이 떼를 쓰든 말든 수업을 진행했을 성격의 건은 그래도 졸지에 주어진 휴식시간이 흡족했다.

  그리고 가람을 바라보았다.

  운동 실력을 알고 있는데 교실에 남아있다니 녀석답다, 고 건은 생각했다. 가람은 창문 밖으로 향했던 시선을 돌려 건을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가람은 입꼬리를 슬쩍 올려 비웃으며 제 눈 언저리를 건드리는 시늉을 했다. 그 안경은 뭐야, 하고 묻는 것 같았다. 건은 거만하게 마주 웃어주며 검지손가락으로 제 턱선을 천천히 문질렀다. 미모 좀 가리려고, 라는 뜻이었다. 가람의 표정이 구겨졌다. 건은 큭큭 웃었다.


  교실 안에는 가람과 건을 제외하고 두 명의 학생이 남아있었다. 건이 딱히 남은 학생들을 제재하지 않는 것을 깨닫고 그 중의 한 명이 밖으로 나갔다. 마지막으로 여학생 한 명이 남았다. 쟤는 안 나가나, 하고 건이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는 사이 그 못마땅한 여학생이 주섬주섬 문제집을 들고 건에게로 다가왔다.


  “저…. 질문이 있는데요….”


  여학생은 새빨개진 얼굴로 수줍게 문제집 페이지를 내밀었다. 가람은 여전히 건을 보고 있는 채였다. 건은 여학생에게 집중하는 척하며 가람에게 신경을 쏟았다. 가람의 시선이 제 쪽을 향해 있다는 것을 알고, 건은 여학생에게 성의 있게 웃어 주었다.


  “아. 이건…….”


  여학생의 분홍색 샤프를 건네받은 건은 자세하게 문제풀이를 해 주었다. 건의 눈은 문제집에, 여학생의 눈은 건의 옆모습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가람은 의외로 성실한 교사의 모습을 보이는 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배알이 꼴렸다. 속으로는 귀찮아 죽겠다고 중얼거리고 있을 거면서 상냥한 척하기는. 불만에 가득 찬 얼굴로 건을 쳐다보기만 하던 가람은, 건이 설명을 마쳤는지 다정하게 웃으며 여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것을 신호탄으로 시끄럽게 의자를 뒤로 밀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학생이 화들짝 놀라 가람 쪽을 돌아보았다. 건은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학생에게 샤프를 건네주었다.


  “이해가 안 가면 다시 오고.”

  “네, 감사합니…….”


  가람이 교실을 빠져나가자, 여학생이 인사를 마치기도 전에 건은 수업 교재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학생이 놀란 얼굴로 건을 쳐다보았지만 신경 쓰지 않고 교실을 나왔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향해 코너를 도는 가람이 보였다. 양호실. 건은 여유로운 얼굴로 흠, 웃었다. 휴대폰을 꺼내 보건 교사에게 톡을 보냈다.


  지금 청가람 내려간다.


  메시지 옆의 1은 금방 사라졌다. 답장이 왔다.


  너 진짜……. 범죄다 범죄.


  건은 답장을 보냈다.


  나는 너 나오면 들어간다.


  답장이 왔다.


  알았다. 밥 살 거지?


  마지막으로 건이 답장을 보냈다.


  ㄴㄴ.


  보건 교사 주은찬은 휴대폰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이미 양호실에 도착해 침대 하나를 차지하고 누운 가람을 힐끗 쳐다본 은찬은 가운을 벗어 옷걸이에 걸고 가람을 향해 말했다.


  “선생님은 잠시 나갔다 올 테니까, 누구 오면 잘 좀 부탁해.”


  네. 심드렁한 대답을 듣고 은찬은 양호실을 나왔다. 양호실 문 앞에서 마침 딱 맞춰 도착한 건과 마주쳤다.


  “그 안경은 뭐야?”

  “하도 여자애들이 고백을 하려고 들어서. 호신용.”

  “…….”


  오늘도 고맙다. 건은 그런 얼굴로 손을 두어 번 흔들고 양호실 안으로 사라졌다. 은찬은 시간 때울 곳을 찾기 위해 학교 안 매점으로 향했다.


  “청가람.”


  가려진 커튼 너머 침대 위에 누워있을 게 뻔했지만 건은 일부러 가람을 한 번 불러보았다. 대답은 없었다. 얌전히 대답하면 청가람이 아니지. 수업 교재를 보건 교사 책상 위에 내려놓은 건은 침대를 가린 커튼을 홱 열어젖혔다. 등을 돌리고 누운 가람의 침대 옆에 스툴을 끌어다 앉았다.


  “청룡. 삐졌어?”

  “아니요.”

  “존댓말 쓸 거야?”

  “선생님한테 누가 반말을 써요.”


  대놓고 빈정거리는 말투였다. 건을 등지고 누운 가람은 평소에 쓰지도 않는 존댓말로 대답했다. 청룡은 가람의 성씨를 핑계삼아 건이 붙여준 유치한 별명이었다. 중학생 가람과, 그 당시 가람을 가르치던 과외 교사 백건은 그렇고 그런 사이, 를 아무도 몰래 몇 개월이나 유지하고 있는 중이었다.


  “안경이 마음에 안 드나?”

  “아뇨. 뭘 해도 멋있으신데요.”

  “그럼 이쪽 좀 보지.”

  “머리가 아파서요.”

  “그건 뽀뽀해야 낫는 건데.”

  “누가 그래요?”


  놀리는 건의 말투에 바락 소리를 지르며 가람이 몸을 일으켰다. 그때를 노린 건이 가람의 어깨를 잡아챘다. 가람이 사납게 눈을 치켜떴다. 건은 알았어 알았어, 하고 입모양으로 달래며 가람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짧은 입맞춤이었지만 가람의 얼굴은 충실하게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학교에서 미쳤어 진짜!”

  “뭐 어때, 아무도 없는데.”

  “그러다 짤려도 난 책임 안 져.”

  “오, 이제 기분 풀렸어?”

  “아까 일부러 그랬지? 나 보라고?”

  “당연하지.”


  열받아. 가람은 건의 상체에 주먹을 한 대 꽂으려다 포기했다. 저 몸은 도대체 뭘로 만들어진 건지 때려도 제 주먹만 아프기 때문이었다. 애인의 질투가 보고 싶었던 건에게 이용당한 여학생은 지금쯤 설레는 가슴을 달래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건은 빨갛고 보들보들한 가람의 볼을 부드럽게 두드려 주었다.


  “애인이 학생이면 이런 게 좋단 말이야. 부끄러워도 하고.”

  “…변태 아니야? 부끄러워하는 게 뭐가 좋아? 양호선생님은 또 어떻게 구워삶은 건데? 민폐 쩔어 진짜.”

  “주은찬도 농땡이 좀 쳐야지. 이왕 민폐 끼친 거 본전은 좀 뽑자.”


  건이 제 입술을 톡톡 쳤다. 가람은 씩씩거리다 괜히 양호실 문을 한 번 쳐다보고 건을 노려보았다. 알겠어, 알겠다니까. 아이 어르는 얼굴로 건이 고개를 까딱거렸다. 상체를 기울인 가람의 입술이 살짝 닿자, 건의 손이 가람의 뒤통수를 감싸 당겼다. 뽀뽀만 하고 떨어지려다 졸지에 제 쪽에서 먼저 키스한 꼴이 되어 버린 가람은 건의 어깨를 퍽 때렸다. 건의 어깨는 멀쩡했고, 가람의 주먹은 아팠다. 입술과 혀는 부드러웠다. 어느새 건은 눈을 감고 있었다. 가람은 지금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오른 이유가 약이 올랐기 때문이라고 애써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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