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 / +a 2014. 9. 26. 23:07

달성표 10. 오이이와 조각 (오이이와 전력60분)







하이큐!! 오이이와 조각 (전력 60분)

주제는 <여행>이었습니다 :)






  이와이즈미는 책을 읽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둘 중 어느 누구의 방도 아니었지만 이미 이 공간에 익숙해져 있었다. 비가 쏟아지다 못해 이제는 천둥번개까지 요란한 하늘을 바라보던 오이카와는 호텔 바닥에 주르륵 주저앉았다.


  “언제 그치는 거야 도대체…….”

  “그렇게 보고 있으면 그치냐.”

  “그래도…….”


  이와이즈미는 책에서 눈을 떼고 오이카와를 힐끗 쳐다보았다. 무릎을 세우고 벽에 기대앉아 고개를 푹 숙인 덕분에 동그란 정수리만 보였다. 오이카와가 창밖을 내다보는 동안 내내 제자리걸음이던 페이지를 덮고 이와이즈미가 몸을 일으켰다. 아까까지 물끄러미 쳐다보던 정수리를 책등으로 내리쳤다.


  “악!”

  “풀죽어있지 마, 멍청아. 땅까지 꺼뜨릴 일 있냐.”


  조물주에게 부동산 사기를 당한 사람처럼 망연자실한 얼굴로 정수리를 감싸고 저를 올려다보는 오이카와 때문에 이와이즈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와이즈미라고 해서 모처럼 떠나온 3박 4일의 여행 일정 중에 벌써 이틀을 숙소에서 책이나 읽고 불평이나 하며 보낸 기분이 유쾌한 것은 아니었다.

  이틀을, 숙소에서, 책이나 읽고, 불평이나 하며.


  “야.”


  에라 모르겠다. 양반다리를 하고 침대에 풀썩 앉아버린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를 불러놓고 마른세수를 했다. 오이카와는 비오는 것도 서러운데 이와쨩까지 나를 때렸어, 하고 방방곡곡에 억울함을 토로하는 얼굴로 이와이즈미를 쳐다보았다. 침대 위에 올라앉아 있는 이와이즈미보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오이카와의 시선이 밑에 있었다. 그게 마음에 들어서 이와이즈미는 이리 올라와 앉으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망할카와.”

  “이와쨩!”

  “죽일카와.”

  “아 진짜!”

  “젠장카와.”


  이제는 하도 들어서 면역이 될 법도 한 호칭들이었지만 오이카와는 여전히 입술을 비죽 내밀고 기분 나쁘다는 내색을 했다. 이와이즈미는 제가 이렇게 대놓고 침대에까지 앉아서 나 이제는 좀 하고 싶다, 하는 아우라를 팍팍 내뿜고 있는데도 눈치를 못 채는 오이카와의 얼굴에 스파이크를 내리꽂고 싶다고 생각했다.


  “뭐, 모르겠으면 말고. 난 잘란다.”


  아까는 책으로 때려놓고 마구 욕을 내뱉더니 이제는 잔다고 이불을 뒤집어쓴 이와이즈미 때문에 오이카와는 이제 넋을 잃은 표정이 됐다. 그제야 이와이즈미의 옆으로 슬금슬금 올라온 오이카와는 이불을 조금 들춰 보았다.


  “억!”


  그리고 베개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고 침대 아래로 나동그라졌다.


  “올라오지 마.”

  “이와쨩…….”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는데……. 오이카와는 울고 싶은 심정으로 나동그라진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애초에 여행을 온 것 자체가 잘못이었나, 하고 오이카와는 생각했다. 골든 위크나 방학 같은 때에는 거의 합숙이 잡혀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시간이 오래 비는 건 사귀고 나서 처음이었다. 깜짝 선물을 줄 생각으로 오이카와가 야심차게 내민 기차표를 본 이와이즈미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더니 출발 날짜부터 확인했다.


  당장 내일이잖아! 망할카와!


  그리고 오이카와의 뒤통수를 알차게 때렸다.

  기차표를 받자마자 크으, 하며 깊은 시름에 빠진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에게 야구 점퍼 하나를 던져주며 당장 따라 나오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리고 그대로 마트에 직행해 여행을 위한 장을 보았다. 옷가지 몇 벌과 중간 사이즈 캐리어 하나를 산 이와이즈미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드럭 스토어를 지나치다 잠시 멈칫했다. 오이카와가 왜, 빼먹은 거 있어? 하고 묻고 나서야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랬었다.


  오이카와는 여행에 오기 전부터 지금까지의 행동을 천천히 돌이켜 생각해보았다. 기차표를 받았을 때부터 표정이 좋지 않더라니, 혹시 오기 싫은 여행을 나 때문에 억지로 온 건가, 까지 생각이 닿자 비 때문에 흐물흐물해진 오이카와의 기분은 아예 물 먹은 신문지가 되었다.


  “미안.”


  엉? 또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잠시간 조용하다 갑자기 사과를 하는 오이카와 때문에 이와이즈미는 덮어썼던 이불을 반쯤 내렸다. 바닥에 앉은 채긴 했지만 웬일로 진지하게 반성하는 얼굴을 하고 있는 오이카와가 있었다.


  “억지로 끌고 온 거면 미안.”

  “…….”


  기대한 내가 바본가.

  이와이즈미는 평소에는 잘도 먼저 달려들면서 이럴 때만 소심해지는 연인을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오이카와는 오이카와대로 아주 심각했다. 멋지게 에스코트하고 싶었는데 뭐 하나 뜻대로 되는 게 없다. 출발할 때부터 이와이즈미는 별로 기뻐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내내 비가 퍼붓는 탓에 밖으로 나가봤자 비 맞은 생쥐 꼴이 될 게 뻔했으며,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없었다. 속이 상했다.


  노력한 건데.


  쯧 하고 혀를 찬 이와이즈미는 경험에 의거한 결론 하나를 도출해냈다. 이대로 오이카와를 그냥 뒀다가는 처진 그의 기분을 수습하기가 심각하게 어려워질 것 같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먼저 백기를 들고 침대에서 일어나 앉은 이와이즈미는 이불을 저 멀리 걷어버렸다.


  “오이카와. 너 몇 살이냐?”


  오이카와는 무슨 뜻이냐는 얼굴을 했다.


  “이 나이 먹고 애인이랑 호텔 방에서 단둘이 꼬박 스물 네 시간을 넘게 있으면서 하고 싶은 게 그렇게도 없냐? 그래서 창문 바깥만 쳐다보고 한숨만 푹푹 쉬고?”

  “…….”

  “침대도 있겠다, 욕실도 있고 소파도 있고. 저기 탁자 위에는 콘돔도 있네. 그래도 그렇게 하늘 쳐다보고 신세 한탄만 하고 있을 거면 혼자 해. 이런 천치 같으니.”


  무드고 뭐고 모르겠다. 이와이즈미는 이만큼 말했는데도 눈치 챌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짐을 챙겨 혼자라도 집에 가겠다고 다짐했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말을 듣는 내내 뒤통수에 배구공을 삼십 개쯤 맞은 기분을 느껴야 했다.

  드럭 스토어.


  그랬었다.


  오이카와의 머리 꼭대기에 느낌표가 하나 떠오르는 환상이 보이는 것 같다고 생각하던 이와이즈미는 갑자기 달려든 무게감에 침대에 벌렁 눕혀지고 말았다.


  “이와쨩!”


  내가! 미안해! 미안! 창밖을 향하던 한숨보다 훨씬 달콤한 입술이 얼굴 여기저기로 날아들어서, 이와이즈미는 발차기에서 한 수 접어 등짝 스매시를 선사해 주었다. 아프다며 우는 소리를 하는 오이카와는 그러나 착실하게 이와이즈미의 티셔츠를 말아 올려 벗기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다른 때는 기분 나쁠 만큼 눈치도 빠른 녀석인데 유독 이럴 때만. 정말이지 밉살맞다고 생각하며 이와이즈미는 어느새 맨몸이 된 오이카와의 미끈한 등을 어루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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