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 / 카게스가 2014. 10. 4. 22:14

달성표 13. 카게스가 조각 (하이큐 글연성 전력60분)






하이큐!! 카게스가 조각입니다.

피아노 치는 카게스가입니다.


하이큐 글연성 전력 60분 참여로 썼습니다. 주제는 <교습/가르쳐주다> 였습니다 :)








  고등학생의 실력이라기에는 지나치게 깔끔했다. 스가와라는 방문 안쪽에서 들리는 피아노 소리에 잡았던 문고리를 슬며시 놓았다. 기술적으로는 지적할 부분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나이가 어린 탓인지 섬세함은 아직 군데군데 비어 있었다. 한창 여자 친구를 만나고 친구들과 놀러 다닐 시기에 틈만 나면 피아노 앞에서 연습에 매달리니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완벽한 기술에 비해 부족한 감성. 때문에 레슨 첫날부터 스가와라의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생각들은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나로도 괜찮을까, 좀 더 유명하고 전문적인 선생님을 소개해 줘야 하지 않을까, 하다못해 감성적인 측면에 도움이 되는 예쁜 여자 선생님이라도. 무슨 일이 있어도, 적어도 이번 콩쿠르까지는 스가와라 씨한테 배울 거라는 카게야마의 고집에 못 이겨 레슨을 계속하고 있었지만 스가와라는 여전히 고민스러웠다.

  그때 피아노 연주가 끊어졌다. 퍼뜩 정신을 차린 스가와라가 얼른 방문을 열었다. 피아노 의자에서 반쯤 일어선 카게야마가 열린 방문 쪽을 쳐다보았다. 스가와라가 씩 웃으며 안녕, 손을 흔들어 주었다.


  “화장실 가게?”

  “아, 아니요…….”


  왜 밖에 서서 안 들어오시나 싶어서. 카게야마는 그러나 말을 잇지 않고 다시 얌전히 피아노 의자에 착석했다. 카게야마는 늘 가로로 긴 피아노 의자의 약간 왼쪽에 치우친 위치에 앉았다.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의 책상 앞에 있는 바퀴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처음부터 이렇게 따로 앉아서 레슨을 했고, 카게야마는 종종 스가와라를 미묘하게 쳐다보곤 했다.

  악보 거치대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콩쿠르에 나갈 곡을 정한 지 일주일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 정돈된 테크닉은 물론 악보까지 완전히 외운 눈앞의 천재 때문에 스가와라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벌써 다 외웠어?”

  “그게, 치다 보니까 저절로.”

  “카게야마, 공부에는 취미가 없다고 들었는데 역시 피아노에 있어서는 경우가 다른 모양이네.”


  스가와라가 놀림조로 얘기하며 킥킥 웃자 카게야마의 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카게야마에게 가끔 농담을 던지면 부끄러우면서 애써 아닌 척하는 고등학생다운 귀여움을 볼 수 있었다. 자아, 한 번 쳐 볼까? 장난스럽게 카게야마의 반들반들한 머리를 헝클어놓고 스가와라가 팔짱을 꼈다. 쳇, 하고 조그맣게 불만을 표시한 카게야마는 가볍게 연주를 시작했다. 조금 투박한 손끝에서 막힘없이 선율이 흘러나왔다.


  물론 카게야마의 ‘고등학생다운’ 면모를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몇 주 전, 카게야마는 바깥에 조금만 서 있어도 땀이 뚝뚝 흐르는 한여름의 날씨에 스가와라의 학교 앞까지 달려왔던 적이 있었다. 전공 수업을 마치고 건물에서 나오던 스가와라를 용케 찾아낸 카게야마는 구십 도로 고개를 숙이고 이렇게 말했다.


  제가 부족하다면,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저는 더 이상 이 아이를 가르칠 수 없다고, 스가와라가 카게야마의 어머니에게 자신의 뜻을 밝힌 다음 날이었다. 이 해프닝은 카게야마의 천재성을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학생이 머리 숙여 부탁할 정도로 자질 있는’ 레슨 교사 스가와라 코우시의 일화로 포장되었다. 나중에 스가와라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그제야 진상을 파악한 동기 중 한 명은 대뜸 이렇게 말했다.


  하긴, 그 녀석 딱 봐도 거만해 보이던데.


  그 말을 듣고 난 스가와라는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며 정정했는데,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가벼운 충격을 받았었다. 한 번도 카게야마가 거만한 아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스가와라의 눈에 비친 카게야마는 오히려 부끄러움을 잘 타는, 동그란 정수리를 가진, 재능을 타고났으면서도 욕심이 가득한, 딱 열일곱 고등학생다운 소년일 뿐이었다.


  선생님.

  늘 나란히 앉아있지만 재능의 격차는 분명했다.


  선생님.

  내가 이 아이의 선생님이라니, 당치도 않아.


  “선생님?”


  어? 카게야마가 스가와라를 재차 불렀다. 저도 모르게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있던 스가와라는 세 번째 부름을 듣고서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연주가 끝나 있었다. 아, 실수. 스가와라는 연주 내내 자신이 다른 생각을 했다는 것을 깨닫고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크게 지적할 부분은 없는데. 다만 어깨에서는 힘을 좀 빼고.”

  “네, 알겠습니다.”

  “음, 그리고 매번 하는 말이지만…….”

  “…….”


  스가와라가 덧붙이지 않아도 카게야마는 생략된 말을 알고 있었다. 곡의 화자가 어떤 마음인지 생각해볼 것. 카게야마는 왼손으로 오른쪽 어깨를 잡고 오른팔을 빙글 돌리며 건반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본인이 알아서 감정을 잡지 않으면 주위의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 스가와라도 카게야마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에 그 이상의 조언은 오가지 않았다. 약간의 침묵이 흘렀고, 무언가 지시를 내려야겠다는 조바심이 든 스가와라가 먼저 입을 열려던 순간 카게야마가 피아노 의자에서 일어섰다.


  “부탁이 있습니다.”


  그리고 카게야마는 피아노 위쪽에서 악보 하나를 집었다. Flying Petals, 연탄곡으로 유명한 악보를 꺼내 펼친 카게야마가 평소에 앉던 왼쪽에서 갑자기 오른쪽으로 성큼 옮겨 앉았다. 스가와라가 의아한 얼굴을 하자 건반 위에 두 손을 올려놓은 카게야마가 우물쭈물 말했다.


  “같이, 쳐 주세요.”


  지금까지 레슨을 하면서 스스로 연습곡 외의 악보를 꺼내든 카게야마는 처음이었다. 갑작스러운 요구였지만 들어주지 않을 이유는 없어서,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의 왼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왼편에 앉은 연주자가 가볍게 스타트를 끊으면 오른쪽에 앉은 연주자가 주主 멜로디를 연주하는 곡이었다. 스가와라가 건반에 손을 얹자 카게야마가 가볍게 숨을 들이마셨다. 연주가 시작되었고, 카게야마는 비교적 쉬운 난이도의 곡임에도 변주 없이 충실히 악보를 따라 치기 시작했다. 스가와라는 왠지 평소보다 굳어 있는 카게야마의 손목을 힐끗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 카게야마 쪽에서 엉뚱한 건반이 눌려 짧은 불협화음이 들렸다. 실수는 좀처럼 하지 않는 녀석이 별 일이네, 하고 생각하는 찰나 다시 한 번 이상한 멜로디가 튀었다.


  어?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스가와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카게야마는 자신의 수준에 비해 한참 간단한 곡인데도 벌써 두 번이나 건반을 잘못 짚었다. 그리고 세 번째 실수가 이어지자 급기야 카게야마는 손을 뚝 멈춰버렸다. 건반 아래로 내려가 무릎에 안착한 손을 따라 자연스럽게 스가와라의 시선이 이동했다.

  놀랍게도 카게야마의 손이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카게야마?”


  스가와라는 황급히 카게야마의 어깨를 짚었다. 고개를 푹 숙인 카게야마는 그대로 얼어 있었다. 어디 아파? 왜 그래? 스가와라가 다그쳐 묻자 카게야마가 대뜸 꽉 막힌 목소리로 무언가 중얼거렸다. 심각한 머릿속에 파고들지 못한 조그만 목소리가 공기 중에 묻혔다. 스가와라는 불안한 마음으로 되물었다.


  “어?”

  “…떨려서 못 치겠는데 어떡해요?”


  왜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가슴 속이 간지럽기 시작했는지 스가와라는 원인을 찾지 못했다. 돌연 달라진 방 안의 공기에 긴장한 탓인지, 아니면 그 밖의 이유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고개를 번쩍 들어올린 카게야마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피아노를 치면서 생각 같은 건 한 적 없었어요. 그런데 이 곡이 무슨 말을 하는지 생각하라고 하면, 그래서 생각하면, 선생님 손가락이 생각나요. 그러면 떨려서 칠 수가 없어요.”


  스가와라는 말을 잃었다.


  “지금처럼 된단 말이에요. 자꾸 틀리고, 엇나가고…….”


  아, 어쩌지.

  가슴이 지나치게 쿵쾅거렸다.


  방이 덥다고, 스가와라는 생각했다. 분위기를 읽는 데에 재주가 있는 편이라고 줄곧 생각해 왔는데, 카게야마의 얼굴만 보고는 도저히 자신의 느낌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카게야마는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억울한 것 같기도 하고 답답한 것 같기도 했다.


  “생각 안 하면 안 틀리고 칠 수 있는데.”

  “…….”

  “…옆에 앉으시니까, 그것도 안 돼서…….”


  후, 스가와라는 웃었다. 마음이 간지러워서 웃지 않고는 참을 수 없었다. 공기가 빠지는 것 같은 웃음소리가 들리자 카게야마의 고개가 약간 움직였다. 누구의 눈치도 볼 것 같지 않은 카게야마가 나름대로 상대의 기분을 살피는 동작이라는 것을 스가와라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스가와라의 흰 손이 카게야마의 손등을 덮었다.


  “나 때문에 피아노를 칠 수가 없다면 큰일인데.”


  심장 속에 피아노 곡조처럼 경쾌한 봄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계속 이렇게 같이 앉아 있어 주면 적응이 좀 될까?”


  카게야마의 귓등이 새빨개졌다. 어쩌면 줄곧 걱정했던 부분이 조금쯤은 해결된 것 같다고, 비어있던 부분이 채워질지도 모르겠다고, 결과적으로 자신이 뛰어난 교사 역할을 했는지도 모른다고, 스가와라는 생각했다. 스가와라의 말에 카게야마가 어눌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기어코 스가와라는 커다랗게 웃음을 터뜨렸다.








글에 등장한 곡 <Flying Petals>는 이런 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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