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농 / 황흑 2014. 10. 7. 01:26

달성표 14. 황흑 조각






쿠로코의 농구 / 황흑 조각



실험적으로 써 본 조각. 일전에 썼던 뱀파이어 황흑 조각의 반대 버전이랄까...


쿠로코는 뱀파이어, 키세는 인간이었다가 쿠로코에게 물려서 뱀파이어화된 인간.

자신을 문 뱀파이어의 혈액을 마셔야 죽지 않을 수 있다.

자신을 문 뱀파이어의 혈액을 마시지 않을 경우에는

인간의 혈액으로밖에 해결되지 않는 갈증과 신체의 붕괴를 겪게 되는데,

갈증은 임시 갈증 억제제로 해결이 가능하지만 점차 진행되는 신체의 붕괴는 막을 수 없다.

갈증 억제제는 일종의 마약 성분으로, 복용할 경우 신체적·정신적 이상 징후를 가져온다.

키세가 불멸의 존재인 쿠로코를 졸라서 자신을 물게 했다.

─라는 설정.


짧음 주의.










  바깥에는 눈이 내렸다. 쿠로코는 현관을 열고 어두운 집에 들어섰다. 바깥에는 칼바람이 불었고, 집 안에는 냉기가 가득했다. 빛도 온기도 없었다. 그러나 둘 중 어느 것도 필요하지 않은 쿠로코는 목도리를 벗어 식탁 위에 올려놓는 것 이외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부스럭, 작게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거실이었다. 쿠로코는 소리가 들린 쪽으로 다가갔다. 천장을 보고 키세가 누워 있었다. 거실에는 커다란 러그 하나가 깔려 있었고, 다른 가구는 없었다. 쿠로코는 허리를 구부려 키세를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얼굴 위로 쿠로코가 보이자 키세가 웃었다.


  쿠로코옷치.


  약에 취한 발음이 뭉개졌다. 쿠로코는 구부렸던 허리를 펴고 제 허리에 손을 짚었다. 키세는 몸을 옆으로 굴렸다. 잠결처럼 느린 동작이었다. 쿠로코를 향해 돌아누워 차가운 쿠로코의 다리를 부둥켜안았다.


  어디 가았다 왔어요.

  …잠시 밖에 다녀왔습니다.

  하안참 찾았느은데.


  키세에 비해 쿠로코의 발음은 말짱했다. 어눌해질 이유가 없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한참 돌고 있는 약기운 때문에 감각이 무뎌진 키세는 쿠로코에게서 풍기는 비릿한 피 냄새를 맡지 못했다. 쿠로코는 선 채로 키세 주위의 바닥을 살폈다. 알약 통과 주사기가 몇 개 보였다. 무방비한 주삿바늘은 날카로웠다. 그것들을 치우려 발걸음을 옮겼고, 키세의 팔은 풀어졌다.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뭐얼요? 뭐어를?

  키세 군.


  비어 있는 주사기를 집어든 쿠로코는 그 상태로 주먹을 쥐었다. 플라스틱과 주삿바늘이 손에서 바스러졌다. 쿠로코의 손에는 상처가 나지 않았다. 키세는 와아, 하는 탄성과 함께 아까처럼 또 한 번 웃었다.


  나아는, 못해요.


  키세의 말에 쿠로코가 입술을 조금 달싹였다. 그러나 대답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키세는 허공을 향해 팔을 뻗었다. 쿠로코는 키세의 손을 잡지 않았다. 휴지통 쪽으로 걸어가 손의 잔재를 털었다. 쿠로코의 움직임을 따라 키세의 손이 움직였다.


  아아프잖아.

  누가 아픕니까.


  쿠로코가 묻자 키세가 으으음, 하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팔꿈치로 바닥을 받치고 상체를 일으켰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쿠로코는 말없이 기다리기만 했다. 키세가 소파에 기대서 앉았다. 쿠로코는 그 옆에 무릎을 접고 앉았다.


  키세 군.


  쿠로코는 긴소매 니트의 소매를 걷었다. 키세의 눈앞에 손목을 내밀었다. 키세는 쿠로코의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제발, 부탁입니다.

  아파요, 쿠로콧치가.


  키세의 발음이 조금 또렷해졌다. 쿠로코는 손목을 내리거나 치우지 않았고, 키세는 쿠로코의 손목을 밀어내거나 잡지 않았다. 물끄러미 내려다보기만 했다.


  제발.


  쿠로코가 그렇게 말했다. 키세가 쿠로코의 얼굴 쪽으로 시선을 올렸다. 쿠로코의 뺨에 키세의 손가락이 닿았다.


  울지 말아요.


  키세의 손에도, 쿠로코의 뺨에도 물기는 없었다. 쿠로코는 울지 않았다. 키세는 한 번 더 같은 말을 했다. 그리고 눈물 줄기를 닦아주듯 엄지손가락을 움직였다.


  상처내기 싫으니까.


  그리고 키세는 눈을 감았다. 몸에 힘이 풀려 옆으로 넘어지려는 것을 쿠로코가 받쳤다. 의식을 잃은 키세를 쿠로코가 조심스럽게 눕혔다.


  역시 내가 이기적이었습니다.


  쿠로코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잠든 키세의 목덜미를, 정확히는 목덜미에 난 상처를 어루만졌다. 바늘에 찔린 것 같은 흉터가 두 개 찍힌 형태였다. 쿠로코는 앉았던 몸을 일으켜 알약 통을 향해 걸었다. 뚜껑이 열린 채 비어 있는 통을 집었다. 통에는 억제제, 라고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이틀 만에 빈, 갈증 억제제 스무 알이 든 통을 쿠로코가 휴지통에 버렸다. 쿠로코는 플라스틱 조각과 흰 약통으로 가득 찬 휴지통을 내려다보았다. 주먹을 세게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에 박혀 들어갔다. 손바닥에서 피는 흐르지 않았다.


  울지 않습니다.


  쿠로코가 그렇게 말했다.


  어떻게 제가.


  쿠로코는 정말로 울지 않고 있었다.









'실험적인 조각'인 이유는 심리나 생각이나 감정을 드러내는 문장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썼기 때문이다...

무슨 효과나 의미가 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 자꾸 첨언하기 싫은데 글 퀄리티가... 이래서... 첨언을 안할 수가 없다...
쿠로코와 '약속'한 것은 약을 줄이고 쿠로코의 피를 마시기로.
갈증 억제제는 복용자의 신체나 정신에 아주 안 좋다.
키세는 쿠로코한테 상처내기 싫다면서 고집을 부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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